1·3·5로 전진하는 교회
1·3·5로 전진하는 교회
교회의 목회 철학은 성경의 진리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구호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인생의 제일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며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명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인가?
교회의 목회 철학은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한 동시에 성경이 말하고 있는 신앙의 공동체성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행복과 기쁨
먼저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면서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과 우리가 행복하며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을 다른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 예로 하나님의 창조를 들 수 있는데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증거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에 대하여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4, 31)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창조물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은 곧 이 세계가 행복한 세계였음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세계로 전해진 것으로 결국 이 세계를 보시기에 좋게, 선하게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복하신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창조에서 절정에 달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 즉 행복한 하나님을 따라 행복한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창1:27) 그들에게 복주셨으며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공간 에덴동산을 선물로 주셨고 삼위하나님과 같이 관계 속에서 행복함을 즐길 수 있도록 가정을 만드셨다.
이런 행복한 존재인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행복한 존재가 행복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으며 결국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다시금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4:1~4절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증언, 즉 하나님의 새창조에서 도 확인 된다. 그곳은 죄가 없는 곳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곳이며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이 없으므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곳이며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함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한 곳이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인간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곳이다.
이렇듯 성경은 처음과 마지막에서 ‘행복하신 하나님, 행복한 세상, 행복한 사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가 바로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세상과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세상,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 즉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삶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신명기10:13에서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 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은 인간의 참된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믿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복과 기쁨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과 기쁨은 인간의 힘으로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행복과 기쁨을 상실한 존재가 되었으며 자력으로는 잃어버린 행복과 기쁨을 다시 찾을 수 없다.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여되는 것이며 다시금 행복과 기쁨의 삶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마지막으로 믿음은 참된 행복과 기쁨을 주는데 반드시 공동체를 통하여 주게 된다.
믿음은 개인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데 이 교회 공동체가 바로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전이다.
공동체성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삼위일체)이며 인간들도 처음부터 공동체(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으로 규정되지만 구원받은 인간들은 반드시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그 안에서 행복과 기쁨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반드시 공동체성이 보장되며 유지되며 강조되어야 한다.
올바른 인생은 올바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때 보장 받는다.
교회의 목회철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인가?
성숙
가장 먼저 행복과 기쁨을 더 깊이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필요로 한다. 성경은 신앙이 성장하고 자라나라고 명령한다(엡 4:15, 벧후 3:18).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며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행복과 기쁨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행복과 기쁨이 더 충만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 즉 말씀에 대한 순종과 기도의 능력으로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다.
섬김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지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린 아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중심성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기준이 자기의 유익이며 이익이다(고전 3:1, 고후 12:14, 히 5:13).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마음을(빌2:5~8) 사람들을 위하여 높고 높은 하나님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낮추시고 복종하신 마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과 같이 온전히 다른 사람을 섬길 때 나타나게 된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께서는 동일하게 우리도 그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셨다. 성숙은 섬김을 통해서 증명된다. 따라서 성숙은 반드시 섬김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한다. 먼저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하며 또한 우리의 가정과 이웃을 섬겨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율법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져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섬김으로 그 행복과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과 나눠야 한다.
선교
우리의 이웃을 섬기는 최고의 목적은 바로 복음 증거, 선교이다.
선교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며 섬김이다.
이 세상 그 무엇이 ‘영원한 생명’보다 더 귀하고 가치가 있단 말인가!!
최고의 행복과 기쁨은 구원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이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의 이웃을 섬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가장 본질적으로 선교로서 우리의 이웃과 지역과 이 세계를 섬겨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을 섬긴 최고의 방법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며 또한 그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이 복을 증거 할 것을 명령하셨다(마28:19~20, 딤후 4:2).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보다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는 일(선교)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러한 복음증거를 위해 교회와 가정과 이웃에 대한 섬김을 감당해야 한다.
성숙과 섬김과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비전이며 교회의 존재목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3대 비전을 어떻게 현실화 시킬 것인가?
예배 회복
성숙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며 가까워져 행복과 기쁨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물론 개인적인 경건생활에도 힘을 쏟아야 하겠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더 깊어져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예배 공동체이기 때문에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성령의 감동하심을 경험해야 하며 하나님이 백성들은 그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위인들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예배와 관련되어 증언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히11:4) 사무엘과 이스라엘이 예배를 회복할 때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임하였다(삼상7:10).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기쁨은 예배를 통하여 올 때 가장 풍성하다.
예배가 살아날 때 우리의 삶도 살아나게 된다.
그래서 로마서 12장1절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한다. 즉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신앙공동체는 예배를 위하여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배의 회복이 신앙의 회복이며 성숙의 기초이고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위한 기본이 된다.
소그룹
교회 내에서의 소그룹의 지위와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소그룹은 교회 3대 비전인 성숙, 섬김, 선교 모든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소그룹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해지고 있으며 또한 섬김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섬김의 궁극적 목적인 선교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소그룹의 목적은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가(성숙)를 서로 표현하며(섬김) 교제를 통하여 서고 공유하고 증거(선교)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배를 통해 회복되고 깊어진 행복과 기쁨은 ‘나’라는 존재를 넘어서 ‘우리’의 것, 즉 ‘소그룹’을 통해 나눠지고 증거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소그룹의 부흥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소그룹이 부흥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도교회의 비전인 성숙과 섬김과 선교가 현실화 되고 있다는 것이며 소그룹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우리의 비전에 적신호가 들어 온 것을 의미한다.
소그룹이 살아야 교회가 살고 소그룹이 부흥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부흥한다.
다음 세대
우리의 비전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비전을 붙잡고 달려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키우셨듯이 우리도 동일하게 우리와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들고 양육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를 위하여 먼저 교회학교가 성장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 일군으로 양육해야 한다.
교회학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부서가 ‘교회내의 부서’로 존재한다는 의식이다.
교회학교는 물론 하나님 나라의 일군을 만들기도 하지만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교회의 일군들을 만들어 가는 곳이기에 우리 자녀들은 우리 교회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의 일군이 되는 것이 기본이다.
만약 이러한 의식이 결여되면 교육과 양육의 방향을 상실하기 쉽다.
그러므로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이 교회가 자신들의 교회이며 이 교회의 일군이 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교육하고 가르쳐야 한다.
또한 우리가 말하는 ‘다음 세대’는 교회 교회학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혈통적 다음 세대도 있지만 신앙적 다음 세대도 있다.
신앙적 다음 세대는 바로 ‘새가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새가족을 보내셨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일원으로 교회와 함께 하도록 보내신 것인데 새가족들이 부흥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이 교회의 비전이 현실화 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우리가 얼마나 성숙(행복하고 기쁜지)하고 섬기며 선교하는지 새가족들은 잘 알고 있다.
선교
선교는 교회 비전이자 우리의 목표이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 이유다.
선교는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했고 섬김에 대하여 헌신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며 우리가 성숙하면 할수록, 섬기면 섬길수록 우리는 더욱 선교할 것이다.
우리의 선교는 해외로 향하여야 함과 동시에 국내에 들어온 많은 외국인들 또한 우리의 선교의 대상임을 잊지 않는다.
복지
교회가 복지를 고민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묻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것은 선교의 한 축이다.
우리의 복음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만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구원은 전인격적인 구원으로 우리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과 관계와 환경 등 우리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구제나 나눔의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선교활동으로 보는 것이 옳다.
복지는 보다 조직적이고 사회적이며, 현실적인 방안들을 갖춘 선교활동이다.
성도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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